묵상

진리 앞에

이에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예수께 묻되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장로들의 전통을 준행하지 아니하고 부정한 손으로 떡을 먹나이까 (막7:5)

관습과 전통, 관례가 결국 본질을 깨닫지 못하게 하는 것을 봅니다. 예수님은 불편한 상황을 마주하셨지만 진리 앞에 타협하지는 않으셨습니다. 예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간다고 하는 우리도 진리 앞에 당당히 맞서야 될 것입니다

믿음이 행동으로 따랐을 때

예수께서 이르시되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지어다 (막5:34)
예수께서 그 하는 말을 곁에서 들으시고 회당장에게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하시고 (막5:36)

야이로의 딸과 예수의 옷에 손을 댄 여자의 공통점은 군중 속에서 예수님을 간절히 찾은 것과 믿음으로 손을 내밀었다는 것입니다. 믿음이 행동으로 따랐을 때 놀라운 은혜를 입은 것처럼 믿음에 확신을 갖고 오늘도 믿음으로 응답하도록 하겠습니다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예수께서 들으시고 그들에게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막2:17)

예수님이 본격적인 사역을 시작하면서 사탄에게 시험당하시고 귀신들린 자를 고치시고 병을 고치셨지만 금식 논쟁, 안식일 논쟁으로 율법이라는 기준에서 예수님의 참 진리를 깨닫지 못하는 것을 봅니다
한편 잘 알아듣지도 못하는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에게 비유로 얘기를 하셨을까 싶지만 귀 있는 자들만이 들을 수 있다는 말씀으로 볼 때 믿음 없이는 말씀이 들어오지 않는다는 것을 배우기도 합니다
오늘도 예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듣겠습니다.

예수님은 다시 사셨습니다

이르되 너희는 말하기를 그의 제자들이 밤에 와서 우리가 잘 때에 그를 도둑질하여 갔다 하라 만일 이 말이 총독에게 들리면 우리가 권하여 너희로 근심하지 않게 하리라 하니( 마28:13~14)

예수님은 다시 사셨습니다. 그런데 무덤을 지켰던 경비병들은 부활의 현장을 목격했지만, 돈과 총독의 두려움으로 사실을 숨겨버립니다. 대제사장과 장로들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신다는 사실을 들었지만, 백성들이 동요가 두려워 사건을 덮어 버립니다.
예수님의 부활 사건은 분명한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자신의 이권을 위해서 외면하고 맙니다. 나 또한 삶 가운데 예수님을 외면하지는 않았는지 점검해봅니다.

기름이 될 수 있는 것들은 무엇일까요?

그 때에 천국은 마치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와 같다 하리니 (마25:1)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때를 알지 못하느니라 (마25:13)

준비된 자와 준비되지 못한 자의 차이는 기회를 얻느냐 얻지 못하느냐의 결과로 이어집니다.
우리 삶에 영역에서 볼 때 학교, 직장, 결혼도 마찬가지로 미리 준비해야 하는 것들이기도 합니다. 이와 같이 천국도 준비된 자만이 들어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열 처녀 모두 등과 기름을 준비는 하였으나 슬기롭지 못한 다섯 처녀는 기름이 부족하였고, 기름을 사러 간 사이에 신랑을 맞이하지 못했습니다. 주님이 언제 오실지 모르기 때문에 우리는 늘 영적으로 깨어 있어야 한다는 교훈입니다. 우리는 더 많은 기름으로 채우기 위해 노력하고 준비해야 합니다. 기름이 될 수 있는 것들은 무엇일까요?

섬김과 구제로 믿음의 본이 되기를

너희 중에 큰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마23:11)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그들이 말하는 바는 행하고 지키되 그들이 하는 행위는 본받지 말라 그들은 말만 하고 행하지 아니하며 (마23:3)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모세의 율법을 말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말씀대로 행함이 없는 것이 문제이고 또 행위가 사람들에게 보이고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래서 위선과 가식적인 사람들입니다. 마찬가지로 말로만 선을 행하고 진리를 외치기보다는 섬김과 구제로 믿음의 본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외식하는 자들을 향한 경고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가 믿음이 있고 의심하지 아니하면 이 무화과나무에게 된 이런 일만 할 뿐 아니라 이 산더러 들려 바다에 던져지라 하여도 될 것이요 (마21:21)

길가에 있는 무화과 나무가 열매를 맺지 못한 것을 보시고 나무를 심판하십니다.
사실 열매를 맺는 시기가 아니었는데 왜 멀쩡한 나무는 심판을 받아야만 했을까요?

첫째는 잎만 무성할 뿐 열매가 없는 것이 외식하는 자들을 향한 경고의 메시지이기도 합니다.

둘째는 예수님의 말씀만으로 무화과나무가 말라 버릴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작은 일이든 큰 일이든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기도하라는 말씀입니다.
살아가면서 믿음의 열매, 사랑의 열매, 소망의 열매가 가득하기를 소망합니다.
그리고 믿음으로 기도할 때 다 주신다는 말씀을 붙잡고 기도하겠습니다

결혼은 창조질서

말씀하시기를 그러므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아내에게 합하여 그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 하신 것을 읽지 못하였느냐
그런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 하시니(19:5,6)

예수님께서는 결혼에 대해서 창조 질서이며 하나님께서 직접 만드신 신령한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모세의 이혼 증서를 왜 만들었는지에 관해 물었을 때 하나님의 처음 계획이 이혼은 아니지만, 배우자가 간음(음행)한 경우에만 예외를 두고 있으나 무조건 처음 창조 질서에 따라야만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제자들을 두 번째 질문을 합니다. 그렇다면 결혼을 해야 합니까? 라는 질문에 예수님은 누구나 결혼 생활을 할 만큼 성숙한 것은 아니고
결혼은 모든 사람을 위한 것도 아니라고 말씀합니다. 독신은 특별한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사의 영역일 뿐이며 가능하다면 우리는 성숙하여 결혼의 큰 뜻을 이를 수
있거든 그렇게 하라고 말씀합니다.
결혼이라는 제도가 가지는 영적 권위를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올해 “다시 쓰는 가정행전” 이라는 표어에 맞도록 가정을 위해 또는 가정을 살리는 일들에 힘쓰겠습니다.

영혼을 사랑하는 말씀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작은 자 중 하나를 실족하게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이 그 목에 달려서 깊은 바다에 빠뜨려지는 것이 나으니라(18:6)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찾으면 길을 잃지 아니한 아흔아홉 마리보다 이것을 더 기뻐하리라(18:13)

영혼을 사랑하는 말씀입니다.

누군가를 실족하게 했을 때 즉 상처를 주거나, 괴롭히는 경우, 마음을 상하게 하거나 험담하고 무시하는 행동을 실족이라고 봅니다.

이때 성경은 실족하게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이 그 목에 달려서 깊은 바다에 빠뜨려지는 것이 낫다고 말씀합니다.

이어서 99마리 양을 두고 한 마리의 양을 찾았을 때 더 기뻐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시고

작은 자 중의 하나라도 잃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니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한 영혼에 대한 사랑을 느낄 수 있는 말씀입니다. 저 또한 오늘도 실족하지 않도록 노력하고 한 영혼이 주님의 품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기도하겠습니다.

누룩에 주의하라

 

11 어찌 내 말한 것이 떡에 관함이 아닌 줄을 깨닫지 못하느냐 오직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을 주의하라 하시니
12 그제서야 제자들이 떡의 누룩이 아니요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교훈을 삼가라고 말씀하신 줄을 깨달으니라
(마16:11-12)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에 주의하라는 말씀을 제자들은 빵을 가져오지 못한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이러한 제자들의 모습에서 예수님은 질책을 하십니다. 아직도 육신의 빵에 머물러 있을 뿐 아니라 오병이어의 이적을 경험했음에도 믿음 없는 제자들의 행동에 안타까워하시는 것을 봅니다. 배고픔을 채우는 빵의 문제보다 영을 병들게 하는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전염을 주의할 것을 말씀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