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기는 사람의 지침서

 *말씀
미쁘다 이 말이여, 곧 사람이 감독의 직분을 얻으려 함은 선한 일을 사모하는 것이라 함이로다 (딤전3:1)

*요약
교회의 지도자로 또는 섬기는 사람이 된다는 것은 기쁘고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조건이 있다고 말합니다.

평판이 좋아야 하고, 아내에게 헌신하며, 남을 따뜻하게 맞이하고, 술을 지나치게 좋아하지 않고, 잘 가르치며, 다투지 않고, 돈을 사랑하지 않고, 직분을 이용해 이익을 도모하지 않는 사람 등등이어야 한다고 합니다.
또한, 가정을 다스리지도 못하는 사람이 교회 일을 돌본다는 것도 어불성설이라고 말합니다.

이렇게 까다로운 조건이 필요한 이유는 예수님을 믿는 믿음이 자랑거리가 되는 것이고 결국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나눔
오늘 말씀은 지도자가 당연히 따라야 할 지침입니다 
한편 이렇게만 살아가고 있다면 세상 사람들에게 욕먹을 일도 없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저 역시 묵상하는 내내 불편한 마음이었던 이유라면 이렇게 살아가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20개 이상이 구체적인 조건을 다시 묵상하면서 부족한 내용을 갖고 회개하고 변화되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

* 말씀
3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곧 음란을 버리고 4 각각 거룩함과 존귀함으로 자기의 아내 대할 줄을 알고 5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과 같이 색욕을 따르지 말고 (살전4:3-5)

* 요약
사도는 데살로니가에 성도에게 주 예수 안에서 명령한 것들을 다시 상기시켜줍니다.

첫째는 음란을 버리고 이방인을 따라 색욕에 쫓지 말고, 거룩해야만 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라고 합니다.

둘째는 믿는 성도가 마땅히 해야 할 것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가르침에 따라 살아가는 것입니다.

* 나눔
시대의 변화로 다원주의, 혼합주의로 참 진리가 혼탁해져 가는 세상에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입니다. 거룩하기 위해서 지켜야 할 것은 음란과 색욕임을 잊지 않겠습니다. 또한 성령 안에 교제와 이웃 사랑은 하나님이 기뻐하시기에 더욱 노력하겠습니다.

살아가는 목적과 자세

* 말씀
9 형제들아 우리의 수고와 애쓴 것을 너희가 기억하리니 너희 아무에게도 폐를 끼치지 아니하려고 밤낮으로 일하면서 너희에게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였노라
10 우리가 너희 믿는 자들을 향하여 어떻게 거룩하고 옳고 흠 없이 행하였는지에 대하여 너희가 증인이요 하나님도 그러하시도다
(살전2:9-10)
 
* 요약
사도바울의 일행은 사람을 기쁘게 하는 아첨의 말도 더러운 이익을 구하거나 탐심, 거짓이나 불결한 동기에서 일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만을 기쁘시게 하려 하였습니다.

이처럼 복음 사역자는 이 세상의 썩어질 것을 구하지 않을 뿐 아니라 사람의 존중을 구하는 것이 아니고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아야 함을 깨닫습니다.

* 나눔
갑자기 엊그제 부서 조직장이 바뀌었습니다. 늘 있는 일이라 별거 아닌데도 괜한 신경이 계속 쓰이게 됩니다.
그러면서 일터에서의 사명을 다시 생각나게 합니다. 무엇을 위해서 살아가며 수고하고 있는지, 어떤 가치관을 갖고 살아야 하는지에 관한 물음 앞에서 오늘 말씀 안에서 그 답을 찾습니다.  바울 일행들 처럼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그 영광을 위해 살아가는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21 모든 통치와 권세와 능력과 주권과 이 세상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22 또 만물을 그의 발 아래에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느니라(엡1:21-22)

교회는 세상의 변두리가 아니라 세상의 중심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모든 것을 그리스도의 발아래에 복종하게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모든 통치자와 권세와 능력 위에 뛰어난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또 하나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에게도 강한 능력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그 권능이 얼마나 큰지 우리들은 경험해 볼 수 있습니다.
우리들 삶의 넉넉함과 풍요를 위한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영혼 구원을 위한, 성도와 교회를 사랑하는 마음을 위한 능력을 경험해 볼 수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에베소 교인들에게 성령을 통해 하나님을 더욱 잘 알게 하셔서 감사하다고 전합니다.
부르심의 소명은 무엇인지, 하늘나라에서 받게 될 축복이 얼마나 풍성하지를 성령님을 통해 깨닫게 해주신다고 합니다.

코로나로 인해 아직도 예수님을 알지 못하고 죽어가는 많은 영혼들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먼저 믿는 우리에게 주신 부르심에 대한 소명을 깨닫고 한 영혼들을 위한 간절함으로 그래서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내어지기를 기도하겠습니다.

경계해야 할 욕망들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갈5:17)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자유를 주셨고 자유를 충분히 누리기를 바라십니다.
그러나 자유를 우리 육체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남용한다면 결코 하나님 나라를 상속받지 못한다고 합니다.
육체의 욕망은 성령님이 바라시는 것과 정반대입니다.
메시지 성경에 있는 육체의 행위를 살펴보았습니다.

– 악취를 풍기며 쌓이는 정신과 감정의 쓰레기
– 과도하게 집착하지만 기쁨 없는 행복
– 껍데기 우상들
– 사랑 없이 되풀이되는 값싼 섹스
– 마술쇼 같은 종교
– 편집증적 외로움
– 살벌한 경쟁
– 모든 것을 집어삼키지만 결코 만족할 줄 모르는 욕망
– 잔인한 기질
– 사랑할 줄도 모르고 사랑받을 줄도 모르는 무력감
– 찢긴 가정과 찢어진 삶
– 편협한 마음과 왜곡된 추구
– 모든 이를 경쟁자로 여기는 악한 습관
– 통제되지도 않고 통제할 수도 없는 중독
– 이름뿐인 꼴사나운 공동체 등
 
하나님께서는 이 모든 육체의 행위를 경계하라고 말합니다. 
이것들은 결코 성령님과 공존할 수 없는 것들입니다.  나에게도 성령님이 내주하실 수 있도록 육체를 도모하는 생각과 행위에 대하여 경계하고
나 스스로 욕망을 베어버리기를 성령님께 간구하며 기도하겠습니다.

율법과 믿음

또 하나님 앞에서 아무도 율법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지 못할 것이 분명하니 이는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하였음이라(갈3:11)

사회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법이 필요하듯이 성경의 율법도 옳고 그름을 판단하며, 죄가 무엇인지를 깨닫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나 율법이 어떤 의식이나 행위로 하나님께 인정받으려고 할 때, 그것이 자신의 공로나 의를 쌓기 위해 이용될 수 있음을 주의해야 합니다.

믿음이 오기 전에 우리는 율법, 즉 죄에 갇혀 있었으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달려 저주를 받으심으로 우리를 율법의 저주에서 구해 주셨습니다.

이제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아들이 되고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율법이 믿음보다 앞서지 않도록,  율법은 우리가 받은 구원의 은혜를 더욱 온전케 하기 위하여 주어진 것임을 잊지 않겠습니다. 아멘

한계 속에서 발견하는 하나님의 사랑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고후12:7)

사도바울의 영적 권위와 능력은 뛰어났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가 교만하지 않도록 가시를 그냥 둔 것을 봅니다.

그 가시는 바울의 약점을 드러내기도 하고 절망이나 사탄의 꼬임에 넘어가게도 하였으나 가시로 인한 연약함이 있기에 기도하게 되고, 하나님을 의지하게 되면서 믿음이 온전해지는 영적 원리임을 깨닫습니다.

또한 주어진 가시의 문제를 볼 것이 아니라 가시를 주신 하나님의 마음을 살펴봅니다. 사랑하는 자들에게 가시는 결코 고통과 절망이 아니라 인간의 한계로 감당할 수 없기에 전능하신 하나님만을 기억하게 하는 사랑임을 기억하게 됩니다.

어떻게 이럴 수 있습니까? 

만일 누가 가서 우리가 전파하지 아니한 다른 예수를 전파하거나 혹은 너희가 받지 아니한 다른 영을 받게 하거나 혹은 너희가 받지 아니한 다른 복음을 받게 할 때에는 너희가 잘 용납하는구나(고후11:4)

다른 예수를 전파하는 자들이나, 다른 영을 받게 하는 거짓 사도들은 잘 용납하면서 하나님의 복음을 값없이 전하는 나에게는 거절하고, 어리석은 죄인으로 취급합니까?

거짓 사도들은 당신의 몸과 영혼을 병들게 하고, 재산을 몰수하고, 가정과 이웃을 파괴하고 있는데 어떻게 용납하고 심지어 그들을 존경하고 충성까지 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을 열심히 섬기고 있는 사도바울은 참된 복음을 전하는데 오해와 불신 등으로 곤경에 처해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로 참 복음을 전하는 영적 지도자는 거부를 당하고 무시를 당하며 우습게 여김을 받기도 합니다.

이렇듯 어려운 상황에 있는 한국 교회에 참된 복음의 종을 세우시고, 우리는 잘 분별하여 거짓 영에 속지 않도록 기도하겠습니다.

아낌없이 주는 연보

이것이 곧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하는 말이로다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고후 9장 6,7절)

마케도니아의 여러 교회가 가난으로 극한 상황에 처해 있을 때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마음을 모아 구제(연보)하였습니다.
물론 하나님의 뜻으로 흘러나온 것이지만 그들 스스로가 실천한 것을 바울은 칭찬합니다. 또한  바울은 계속해서 선한 의도가 퇴색하지 않도록 구제 헌금 모으는 일에 힘써 달라고 당부합니다.

특히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며, 결코 인색함이나 억지로 하지 말아야 할 이유는 하나님께서는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심는 자에게 씨와 먹을 양식을 주시는 주님이 우리에게 심을 것을 주시고 풍성하게 열매를 맺게 하실 것이라고 말합니다.

우리의 모든 것을 단숨에 부요하게 하시고 가난하게 하시는 하나님임을 믿습니다. 또한 어렵고 힘든 자를 돕는 것이 의라고 여김을 받는다는 것도 깨닫습니다.  “주머니 속의 지갑이 회개하지 않은 신앙인은 진정으로 회개한 사람이 아니다.”라고 했던 존 웨슬리 목사님이 말씀을 되새겨보는 하루가 되겠습니다.

부활의 소망

16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일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었을 터이요
17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고전15:16-17)

이제 부활절이 다가옵니다. 오늘은 부활에 대한 의미를 묵상해 볼 수 있었습니다.
지난날 교회에서 부활절 예배를 드릴 수 있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습니다.
4월에는 교회에서  부활절 예배를 드렸으면 좋겠다는 소망과 기대를 가져봅니다.

고린도 성도들에게 바울은 일부 사람들이 왜 부활이 없다고 말하고 다니는지 호통(?)을 칩니다.
죽은 사람의 부활이 없다면, 그리스도께서 살아나지 못하셨을 것이고, 우리의 선포도 헛되고, 여러분의 믿음도 헛된 것이라고 강조합니다.  또한 우리는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고,  세상 사람들에게는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일부 성도들이 부활을 자신이 이해할 수 있는 범위에서 받아들이고 있는 부분은 경계해야 될 부분일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는 마지막 때 재림하셔서 그리스도 안에서 잠든 사람들을 부활시키고 세상에 모든 권위와 권력을 폐하시고 하나님 아버지께 그 나라를 넘겨드릴 때까지 다스릴 것이라는 소망과 부활의 기쁨을 강조합니다.

부활이 없다면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우리가 절제하며 살아야 하고, 세상 사람들에게 손가락질 받아야 할 이유가 없었을 것입니다. 
부활의 믿음이 지금 나에게 기쁨이고 행복이 됩니다.
더불아 부활의 소망을 전하는 것이 나의 의무이며,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일 것입니다. 아멘